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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59

갈대 - 정호승

갈대 - 정호승  내가 아직도 강변에 사는 것은죽은 새들이 내 발밑에서 물결치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도 아무도 살지 않는 강변에 사는 것은실패도 인생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강한 자가 이긴 것이 아니라이긴 자가 강한 것이라는 죽은 새들의 정다운 울음소리를 들으며온종일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나의 삶이 진정 괴로운 것은분노를 삭일 수 없다는 일이었나니 내가 아직도 바람 부는 강변에 사는 것은죽은 새들이 날아간 하늘에 햇살이 빛나기 때문이다. 정호승 시집중에서

시,좋은글 2024.08.14

밥값 - 정호승

밥값 - 정호승  어머니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아무리 멀어도아침에 출근하듯이 갔다가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겠습니다식사 거르지 마시고 꼭꼭 씹어서 잡수시고외출하실때는 가스불 꼭 잠그시고너무 염려 하지는 마세요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정호승 시집중에서

시,좋은글 2024.08.12

선암사 - 정호승

선암사 -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묵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 앞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시집 중에서

시,좋은글 2024.08.12

눈사람 - 정호승

눈사람 - 정호승​눈 내리는 새해 아침에 새처럼 소리치며 아이들이눈을 뭉쳐 서로 눈싸움을 하더니그 중 한아이가 연탄재를 굴려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예, 눈사람은 연탄재로 만드는게 아니야하얀 눈을 뭉쳐서 만드는 거야나는 어른으로서 아이에게어미까치처럼 점잖게 소나무에 앉아 훈계하고아이가 만든 눈사람을 바라보았다눈사람은 가슴에 연탄재를 품고어느새 운주사 석불 같은 부처님이 되어 있었다눈싸움을 마치고다른 아이들이 만든 눈사람도다들 부처님이 되어 빙긋이 웃고 있었다펄펄 내리는 눈송이들이눈사람 부처님 앞에 신나게 재롱을 떨다가마른 풀잎 위에도강아지가 뛰어간 발자국 위에도고요히 내리고 있었다​정호승 시집 에서 발췌

시,좋은글 2024.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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