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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54

선암사 - 정호승

선암사 -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묵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 앞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시집 중에서

시,좋은글 2024.08.12

눈사람 - 정호승

눈사람 - 정호승​눈 내리는 새해 아침에 새처럼 소리치며 아이들이눈을 뭉쳐 서로 눈싸움을 하더니그 중 한아이가 연탄재를 굴려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예, 눈사람은 연탄재로 만드는게 아니야하얀 눈을 뭉쳐서 만드는 거야나는 어른으로서 아이에게어미까치처럼 점잖게 소나무에 앉아 훈계하고아이가 만든 눈사람을 바라보았다눈사람은 가슴에 연탄재를 품고어느새 운주사 석불 같은 부처님이 되어 있었다눈싸움을 마치고다른 아이들이 만든 눈사람도다들 부처님이 되어 빙긋이 웃고 있었다펄펄 내리는 눈송이들이눈사람 부처님 앞에 신나게 재롱을 떨다가마른 풀잎 위에도강아지가 뛰어간 발자국 위에도고요히 내리고 있었다​정호승 시집 에서 발췌

시,좋은글 2024.08.11

명동성당 - 정호승

명동성당 - 정호승​​바보가 성자가 되는 곳성자가 바보가 되는 곳돌멩이도 촛불이 되는 곳촛불이 다시 빵이 되는 곳​홀연히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곳돌아왔다가 고요히 다시 떠날 수 있는 곳죽은 꽃의 시체가 열매 맺는 곳죽은 꽃의 향기가 가장 멀리 향기로운 곳​서울은 휴지와 같고이 시대에 이미 계절은 없어나 죽기 전에 먼저 죽었으나하얀 눈길을 낙타 타고 오는 사나이명동성당이 된 그 사나이를 따라 나 살기 전에 먼저 살았으나​어머니를 잃은 어머니가 찾아오는 곳아버지를 잃은 아버지가 찾아와 무릎 꿇는 곳종을 잃은 종소리가 영원히 울려 퍼지는 곳​시집 에서 발췌​

시,좋은글 2024.08.11

정호승 문학관 - 작가와의 만남

난 7월달부터 들어서 이제 두번째 듣고 있다.역시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라서 그런가 더 강의가 멋지고 귀에 쏙 들어온다.오늘도 역시 쉬는 시간없이 강의시를 5편이라 소개했다. 1. 바닥에 대하여2. 눈사람3. 서울의 예수4. 명동성당 5.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바닥에 대하여                               정호승 바닥까지 가 본 사람들은 말한다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바닥은 보이지 않지만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 올 수 있다고 바닥을 굳세게 딛고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더 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발이 닿지 않아도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

소소한일상 2024.08.11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 - 정호승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 -  정호승서울에 푸짐하게 첫눈이 내린 날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은고요히 기도만 하고 있을 수 없어추기경 몰래 명동성당을 빠져나와서울역 시계탑 아래에 눈사람 하나 세워놓고노숙자들과 한바탕 눈싸움을 하다가무료급식소에 들러 밥과 국을 퍼주다가늙은 환경미화원과 같이 눈길을 쓸다가부지런히 종각역에서 지하철을 타고껌 파는 할머니의 껌통을 들고 서 있다가전동차가 들어오는 순간 선로로 뛰어내린한 젊은 여자를 껴안아주고 있다가인사동 길바닥에 앉아 있는 아기부처님 곁에 앉아돌아가신 엄마 얘기를 도란도란 나누다가엄마의 시신을 몇개월이나 안방에 둔중학생 소년의 두려운 눈물을 닦아주다가경기도 어느 모텔의 좌변기에 버려진한 갓난아기를 건져내고 엉엉 울다가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은부지런히 다시..

시,좋은글 2024.08.07

창문 - 정호승

창문 -  정호승  창문은 닫으면 창이 아니라 벽이다창문은 닫으면 문이 아니라 벽이다창문이 창이 되기 위해서는창과 문은 열어 놓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세상의 모든 창문이닫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아는 데에 평생이 걸렸다 지금까지는창문을 꼭 닫아야만 밤이 오는 줄 알았다많은 사람들이 창문을 열었기 때문에밤하늘에 별이 빛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제 창문을 연다당신을 향해 창문을 열고 별을 바라본다창문을 열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당신의 모습이 보인다

시,좋은글 2024.07.28

바닷가에 대하여 - 정호승

바닷가에 대하여 - 정호승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게 좋다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게 좋다잠자느 지구의 고요한 숨소리를 듣고 싶을 때지구귀를 걸어가는 새들의 작은 발소리를 들고 싶을 때새들과 함께 수평선 위로 걸어가고 싶을 때서럽게 우는 어머니를 껴안고 함께 울었을 때모내기가 끝난 무논의 저수지 둑 위에서자살한 어머니의 고무신 한 짝을 발견했을 때바다에 뜬 보름달을 향해 촛불을 켜놓고 하염없이두손 모아 절을 하고 싶을 때바닷가 기슭으로만 기슭으로만 끝없이 달려가고 싶을 때누구나 자기만의 바닷가가 하나씩 있으면 좋다자기만의 바닷가로 달려가 쓰러지는 게 좋다.

시,좋은글 2024.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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