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시,좋은글 590

우리가 키스할때 눈을 감는 건 - 고명재

우리가 키스할때 눈을 감는 건 - 고명재​​개와 눈과 아이는 같은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순전히 날뛰는 힘을 갖고 싶어서눈 녹인 물을 내 안에 넣고 싶었다차갑고 뻑뻑한 팔을 주무르면서떠난 개들의 눈 쌓인 그릇을 치울 수 있다면​소의 농포를 환부에 슬쩍 바르고키스하고이민자와 손을 잡고감자에 뿔이 자라는 소리를 들으며설편처럼 사랑해 사랑해 속삭인다면​모든 목줄이 훌라후프로 커다래지겠지죽은 개들이 혀를 빼물고 냇물일 달리고쫑긋쫑긋 산맥이 서서 목덜미 터지고 흙속에서 더덕이 다리를 뻗을 때네 어둠 속의 육상을 보고 있다짓무른 뒷목에 손을 얹은 채차가운 감자를 갈아서 눈처럼 바른다네 캄캄한 방문에 입을 맞춘다​그리고 나는, 함부로 더 이상해져야지꽃술을 만지던 손끝으로배꼽을 파면서입이나 귀에서 백합이 마구 피면 좋겠..

시,좋은글 2025.03.22

소나무에 대한 예배 - 황지우

소나무에 대한 예배 - 황지우   학교 뒷산 산채하다, 반성하는 자세로,눈발 뒤집어쓴 소나무, 그 아래서오늘 나는 한 사람을 용서하고내려왔다   내가 내 품격을 위해서 너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것이나를 이렇게 휘어지게 할지라도.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이 地表위에서 가장 기품 있는 建木; 소나무, 머리의 눈을 털며잠시 진어리친다.

시,좋은글 2025.03.22

여기서 더 머물다 가고 싶다 - 황지우

여기서 더 머물다 가고 싶다 - 황지우   펑! 튀밥 뒤기듯 벚나무들,공중 가득 흰 꽃팝 튀겨놓은 날잠시 세상 그만두고그 아래로 휴가갈 일이다 눈감으면;꽃잎 대신잉잉대는 벌들이 달린,금방 날아 갈 것 같은 소리-  나무 한 그루이 지상에 유감없이 출현한다 눈뜨면, 만발한 벚꽃 아래로유모차를 몰고 들어오는 젊은 일가족;흰 블라우스에 그 꽃그늘 받으며 지나갈 때팝콘 같은, 이 세상 한때의 웃음 그들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內藏寺가는 벚꽃길 ; 어쩌다 한순간나타나는, 딴 세상 보이는 날은우리, 여기서 쬐끔만 더 머물다 가자

시,좋은글 2025.03.18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 황지우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 황지우  初經을 막 시작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줄 수도 없고생이 끔찍해졌다딸의 일기를 이젠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사람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가족의 성금란을표시해 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바깥을 거닌ㄷ. 바깥;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버리고 싶은 생;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먼 눈..

시,좋은글 2025.03.18

기억할 만한 지나침 - 기형도​

기억할 만한 지나침                                     - 기형도​그리고 나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눈은 퍼부었고 거리는 캄캄했다움직이지 못하는 건물들은 눈을 뒤집어쓰고희고 거대한 서류 뭉치로 변해갔다무슨 관공서였는데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그 춥고 큰 방에서 서기(書記)는 혼자 울고 있었다!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중지시킬 수 없었다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밖에서 떠나지 못했다​​그리고 나는 우연히 지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밤은 깊고 텅 빈 사무실 창밖으로 눈이 퍼붓는다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좋은글 2025.03.18

극장 문을 나서며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극장 문을 나서며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새하얀 화폭 위로 깜빡이면 명멸하는 꿈달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과도 같은 두 시간그리운 멜로디에 실린 옛사랑이 있고머나먼 방랑으로부터의 행복한 귀환이 있다. 동화가 끝난 세상에는 검푸른 멍과 희뿌연 안개숙련되지 않은 어설픈 표정과 배역들만 난무할 뿐군인은 레지스탕스의 비애를 노래하고소녀는 고달픈 삶의 애환을 연주한다 나, 그대들에게 돌아가련다, 현실의 세계로어둡고, 다사다난한 운명의 소용돌이로-문간에서 서성이는 외팔이 소년과공허한 눈빛의 소녀가 있는 그곳으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중에서

시,좋은글 2025.01.31

두 번은 없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없이 태어나서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여름에도 겨울에도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더라?꽃인가, 아님 돌인가? 야속한 시간, 무엇 때문에 너는쓸데없는 두려움을 자아내는가?너는 존재한다ㅡ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

시,좋은글 2025.01.10

2막 - 김근희

2막 - 김근희  새를 보았다배란다를 빠져나가려 바둥거리던 주검엔벽의 균열이 박혀 있었다소용돌이치다 멈춰버린 현기증이 가을 햇살을 급하게 끊어내고 있었다 가쁜 숨소리가 깃털에 결을 새긴굳어버린 돌 하나손바닥 위에 위인다차갑다 들여다본다눈 주위는 아직도 보송했으나 외마디가 동공에 방점을 찍고부리는 깨어져 있다손바닥이 따뜻해진다 다시 들여다본다산꼭대기 바뒤절벽에 제 부리를 짓찧는 늙은 독수리되살아나려 목숨을 축이던 이슬방울 속에서핏덩이, 이 쉼이 보인다 돌에서 부리가 자라 나온다쉼 없는 순간순간이 파문(波文)을 굴리고 있다무서운 속력이 어둡고 싸늘한 동굴을 빠져 나오고 베란다 문을 열고 돌을 던진다가벼워지고,내 손이 날개처럼 펄럭인다.

시,좋은글 2024.12.0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