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시,좋은글 559

골목길 - 정호승

골목길 - 정호승  그래도 나는 골목길이 좋다서울 종로 피맛골 같은 골목길 보다도시 변두리 아직 재개발되지 않은 블럭담이 이어져 있는 산동네의정부 수락산 밑 천상병시인의 집이 있던 그런 골목길이 좋다담 밑에 키 큰 해바라기가 서 있고개똥이 하늘을 쳐다보다가소나기에 온몸을 다 적시는 그런 골목길이 좋다내 어릴때 살던 신천동 좁은 골목길 처럼전봇대 하나 비스듬히 하나 서 있고길 모퉁이에 낡은 구멍가게 하나쯤있으면 더 좋다주인 할머니가 고양이 처럼 졸다가부채를 부치다가어머니 병환은 좀 어떠시냐고라면 몇개 건네주는 그 가난의 손끝은 얼마나 소중한가늦겠다고 어서 다녀오라고너무 늦었다고 어서 오라고 안아주던 어머니의 그리운 손은  이제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어느 술꾼이 노상방뇨하고 지나가는 내 인생의 골목길이..

시,좋은글 2024.11.08

마음의 사막 - 정호승

마음의 사막 - 정호승  별똥 하나가 성호를 긋고 지나간다낙타 한마리가 무릎을 꿇고 기도한 지는 오래다별똥은 무슨 죄가 그리 많아서 저리도 황급히 사라지고낙타는 무슨 죄가 그리 많아서 평생을 무릎조차 펴지 못하는가다시 별똥 하나가 성호를 긋고 지구 밖으로 떨어진다위경련을 일으키며 멀리 녹두꽃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머리맡에 비수 한자루를 들고 잠이 드는 사막의 밤초승달이 고개를 숙이고 시퍼렇게 칼을 갈고 앉아 있다인생은 때때로 기도 속에 있지 않다너의 영혼을 어루만지기 위해서는 침묵이 필요하다. 24.11.5.화. 정호승문학관 특강에서

시,좋은글 2024.11.07

영등포가 있는 골목​ - 정호승

영등포가 있는 골목​ - 정호승​영등포역 골목에 비 내린다노란 우산을 쓰고잠시 쉬었다 가라고 옷자락을 붙드는늙은 창녀의 등 뒤에도 비가 내린다행려병자를 위한 요셉병원 앞에는끝끝내 인생을 술에 바친 사내들이 모여또 술을 마시고비 온 뒤 기어나온 달팽이들처럼언제 밟혀 죽을지도 모르고 이리저리 기어다닌다영등포여이제 더이상 술을 마시고병든 쓰레기통은 뒤지지 말아야 한다검은 쓰레기봉지 속으로 기어들어가홀로 웅크리고 울지 말아야 한다오늘밤에는저 백열등 불빛이 다정한 식당 한구석에서나와 함께 가정식 백반을 들지 않겠느냐혼자 있을수록 혼자 되는 것보다는혼자 있을수록 함께 되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마음에 꽃힌 칼 한자루보다마음에 꽃힌 꽃 한송이가 더 아파서잠이 오지 않는다도대체 예수는 어디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는가영등..

시,좋은글 2024.11.06

우체국을 지나며 - 문무학

우체국을 지나며 - 문무학   살아가며 꼭 한번은 만나고 싶은 사람우연히 정말 우연히 만날 수 있다면가을날 우체국 근처 그쯤이면 좋겠다​누군가를 그리워하기엔 우체국 앞만 한 곳 없다우체통이 보이면 그냥 소식 궁금하고써놓은 편지 없어도 우표를 사고 싶다​그대가 그립다고 그립다고 그립다고우체통 앞에 서서 부르고 또 부르면그 사람 사는 곳까지 전해질 것만 같고​길 건너 빌딩 앞 플라타너스 이파리는언젠가 내게로 왔던 해 묵은 엽서 한 장그 사연 먼 길 돌아와 발끝에 버석거린다​물 다 든 가로수 이파리처럼 나 세상에 붙어잔바람에 간당대며 매달려 있지만그래도 그리움 없이야 어이 살 수 있으랴​

시,좋은글 2024.11.01

바람의 말 - 마종기

바람의 말 -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나 오늘 그대 알았던땅 그림자 한모서리에꽃 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마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지척의 자로만재고 살 건가가끔 바람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마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시,좋은글 2024.11.01

대숲 아래서 - 나태주

대숲 아래서 - 나태주  1.바람은 구름을 몰고구름은 생각을 몰고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대숲 아래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 2.밤새도록 댓잎에 별빛 어리듯그슬린 등피에는 네 얼굴이 어리고밤 깊어 대숲에는 후둑이다 가는 밤 소나기 소리그리고도 간간이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 소리 3.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자고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자국문을 여니 산골엔 실 비단 안개 4.모두가 내것만이 아닌 가을,해지는 서녘 구름만이 내 차지다.동구밖에 떠드는 애들의소리만이 내 차지다또한 동구밖에서부터 피어오르는밤안개만이 내 차지다. 하기는 모두가 내것만은 아닌 것도 아닌이 가을,저녁밥 일찍이 먹고우물가에 산보 나온 달님만이 내 차지다물에 빠져 머리칼 헹구는달님만이 내 차지다.

시,좋은글 2024.11.01

동백꽃 피려 할 때 - 전영숙

동백꽃 피려 할 때 - 전영숙 찌르르 젖이 돈다둥글게 문질러아기의 입에  젖을 물린다동백나무가 공중의 입에 꽃몽우리를 물리 듯게 어찌나 세게 빠는지아기의 이마와 코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꽃몽우리 끝도 피가 몰린 듯 발갛다 쓰리고 화끈거리겠지속엣 것을 빨아 낼 때부르르 떨리던 고통흔들리는 동백나무가바람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쏟아져 나오는 젖 물처럼터져 나올 꽃잎들또 공중의 입속은 얼마나 달콤할까햇빛과 바람에통통 분 꽃몽우리가 벌어진다 벌과 나비공중에 속한 것 모두잠든 아기 배만큼부르겠다찌르를 젖이 돈다동백이 피려 한다

시,좋은글 2024.10.3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