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노래- 박목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게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시,좋은글 2021.08.16
길처럼 - 박목월 머언 산 구비구비 돌아갔기로 산구비마다 구비마다 절로 슬픔은 일어...... 뵈일 듯 말 듯한 산길 산울림 멀리 울려 나가다 ......어쩐지 어쩐지 울음이 돌고 생각처럼 그리움처럼...... 길은 실낱 같다. 시,좋은글 2021.08.16
오월의 바람 - 박인환 그 바람은 세월을 알라고 그 바람은 내가 쓸쓸할 때 불어온다 그 바람은 나에게 젊음을 가르치고 그 바람은 봄이 떠나는 것을 말한다 그 바람은 눈물과 즐거움을 갖고 있다 그 바람은 오월의 바람 시,좋은글 2021.08.16
낮 달이 있는 풍경 - 서지월 구부정한 바지랑대 위에 낮달 하나 걸려 있다. 바람도 풀밭으로 가 엎드린 시간 채송화 꽃밭에는 졸음오는 맨드라미 피가 달아 아버지의 나귀 방울 소리는 감투봉을 넘었는지 들리지 않고 동구밖 미루나무 꼭대기엔 흰 배때아리 드러낸 까치 한 쌍. 무어라 꽁지 흔들며 알아듣지 못하는 말시늉을 건넨다. 한참을 이고 섰던 광주리 내려놓듯 댓돌 위 신발 한 켤레 벗어놓고 엄마는 방으로 들어 끙끙 앓으신다. 구부정한 바지랑대 위 낮달 하나 걸려 오도가도 못하듯 마당가엔 지심 매던 엄마의 호미 한 자루 드러누워 있다. 나는 부엌으로 가 풍로에 불지펴 약탕기에 탕약을 끓이고 있다. 시,좋은글 2021.08.16
스위치를 켜며 - 이정하 스탠드 스위치를 켜면 너의 생각도 켜졌다 이렇듯 간단하게 너의 밝음과 마주할 수 있다면 컴퓨터 스위치를 켜듯 텔레비젼 리모컨을 켜듯 욕실의 수도 꼭지를 돌리듯 스마트폰 버튼을 누르듯 이렇듯 간단하게 너를 켤 수 있다면 켜기만 하면 네가 콸콸 쏟아져 나온다면 네 목소리 네 모습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시,좋은글 2021.08.16
어둠까지 - 이정하 빛에 눈멀어 사랑에 빠지면 그의 어둠은 볼 수 없게 된다 나중에서야 발견하고선 왜 감추었느냐고 따지지 마라 사랑은, 그 어둠까지 감싸주는 일이다 시,좋은글 2021.08.16
누더기 별- 정호승 사람이 다니는 눈길 위로 누더기가 된 낙엽들이 걸어간다 낙엽이 다니는 눈길 위로 누더기기가 된 사람들이 걸어간다 그 뒤를 쓸쓸히 개미 한 마리 따른다. 그 뒤를 쓸쓸히 내가 따른다 누더기기 되고 나서 내 인생이 편안해졌다 누더기가 되고 나서 비로소 별이 보인다 개미들도 누더기별이 되는 데에는 평생이 걸린다. 시,좋은글 2021.08.15
구두끈을 매는 남자- 심재휘 서소문 코오롱 빌딩 앞 횡단보도 낡은 신호등이 오늘은 먹통이다 명멸의 일생이 잠시 눈을 감는 동안 잰걸음으로 비둘기 한 마리 밥집 골목으로 들어간다 희미해진 횡단보도를 사람들이 슬금슬금 건너는 도심의 점심시간 눈이 한바탕 올 듯한 날씨에 하늘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사라진 꿈들이 서글프게 흩날리기 시작한다 좁은 하늘 그 놓은 곳에서 이 넓은 거리를 자꾸 내려다 보는 이는 누구인가 횡단보도 한쪽 끝 사내 하나가 허리 굽혀 풀어진 구두 끈을 매고 있다 한껏 동여맨다 오늘따라 구두끈에 묶인 가족이 눈발에 춥다. 시,좋은글 2021.08.15
버려진 봄날 - 서경온 쓰러진 담장이 있엇다. 허물어진 우물가. 비가 새는 지붕 밑. 금이 간 아궁이가 보였다. 떨어져 나간 문짝. 텅 빈 외양간 옆이었다 온뭄으로 불 밝히고 서서 살구꽃 환하게 피어 있었다. 주인 떠난 집. 버려진 봄날의 아름다운 SOS. 눈부시게, 눈물겹게...... 손짓하고 있었다. 시,좋은글 2021.08.15
그때 보았다 - 신달자 어깨 늠름한 젊은 시절 주머니 두둑한 중년의 의젓한 모습에도 엿볼 수 없었어라 한 점 살까지 마음까지 완연 육탈한 다만 순종 두 글자의 뼈로 누운 형해의 끝 그때 보았다 오직 두 눈에 넘치는 맑은 섬광 딸이 처음 본 지상의 가장 아름다운 아버지 시,좋은글 2021.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