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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좋은글 591

4월의 노래- 박목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게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 ​

시,좋은글 2021.08.16

낮 달이 있는 풍경 - 서지월

구부정한 바지랑대 위에 낮달 하나 걸려 있다. 바람도 풀밭으로 가 엎드린 시간 채송화 꽃밭에는 졸음오는 맨드라미 피가 달아 ​ 아버지의 나귀 방울 소리는 감투봉을 넘었는지 들리지 않고 동구밖 미루나무 꼭대기엔 흰 배때아리 드러낸 까치 한 쌍. 무어라 꽁지 흔들며 알아듣지 못하는 말시늉을 건넨다. ​ 한참을 이고 섰던 광주리 내려놓듯 댓돌 위 신발 한 켤레 벗어놓고 엄마는 방으로 들어 끙끙 앓으신다. ​ 구부정한 바지랑대 위 낮달 하나 걸려 오도가도 못하듯 마당가엔 지심 매던 엄마의 호미 한 자루 드러누워 있다. ​ 나는 부엌으로 가 풍로에 불지펴 약탕기에 탕약을 끓이고 있다. ​

시,좋은글 2021.08.16

구두끈을 매는 남자- 심재휘

서소문 코오롱 빌딩 앞 횡단보도 낡은 신호등이 오늘은 먹통이다 명멸의 일생이 잠시 눈을 감는 동안 잰걸음으로 비둘기 한 마리 밥집 골목으로 들어간다 희미해진 횡단보도를 사람들이 슬금슬금 건너는 도심의 점심시간 눈이 한바탕 올 듯한 날씨에 하늘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사라진 꿈들이 서글프게 흩날리기 시작한다 좁은 하늘 그 놓은 곳에서 이 넓은 거리를 자꾸 내려다 보는 이는 누구인가 횡단보도 한쪽 끝 사내 하나가 허리 굽혀 풀어진 구두 끈을 매고 있다 한껏 동여맨다 오늘따라 구두끈에 묶인 가족이 눈발에 춥다.

시,좋은글 2021.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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