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좋은글

구두끈을 매는 남자- 심재휘

소소한 소선생 2021. 8. 15. 20:13
반응형

서소문 코오롱 빌딩 앞 횡단보도

낡은 신호등이 오늘은 먹통이다

명멸의 일생이 잠시 눈을 감는 동안

잰걸음으로 비둘기 한 마리

밥집 골목으로 들어간다

희미해진 횡단보도를 사람들이

슬금슬금 건너는 도심의 점심시간

눈이 한바탕 올 듯한 날씨에

하늘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사라진 꿈들이 서글프게

흩날리기 시작한다 좁은 하늘

그 놓은 곳에서 이 넓은 거리를

자꾸 내려다 보는 이는

누구인가

횡단보도 한쪽 끝

사내 하나가

허리 굽혀 풀어진 구두 끈을 매고 있다

한껏 동여맨다 오늘따라

구두끈에 묶인 가족이

눈발에 춥다.

 

반응형

'시,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둠까지 - 이정하  (0) 2021.08.16
누더기 별- 정호승  (0) 2021.08.15
버려진 봄날 - 서경온  (0) 2021.08.15
그때 보았다 - 신달자  (0) 2021.08.15
비 운다 - 이정하  (0) 2021.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