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엽서 - 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시,좋은글 2021.08.11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의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반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시,좋은글 2021.08.11
고래를 위하여-정호승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바다가 아니지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 푸른 바다가 고래를 위하여 푸르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모르지 고래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올라 별을 바라본다 나도 가끔 내 마음속의 고래를 위하여 밤하늘 별들을 바라본다 시,좋은글 2021.08.11
낯선 곳 - 고은 떠나라 낯선 곳으로 아메리카라 아니라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단 한번도 용서할 수 없는 습관으로부터 그대 떠나라 아기가 만들어낸 말의 새로움으로 할머니를 알루빠라고 하는 새로움으로 그리하여 할머니조차 새로움이 되는 곳 그 낯선 곳으로 떠나라 그대 온갖 추억과 사전을 버리고 빈주먹조차 버리고 떠나라 떠나는 것이야말로 그대의 재생을 뛰어넘어 최초의 탄생이다. 떠나라 시,좋은글 2021.08.11
봄에 꽃들은 세번씩 핀다 - 김경미 필 때 한 번 흩날릴때 한 번 떨어져서 한 번 나뭇가지에서 한 번 허공에서 한 번 바닥에서 밑바닥에서도 한 번 더 봄 한 번에 나무들은 세번씩 꽃 핀다 시,좋은글 2021.08.11
7월7일의 한국 구름 - 김경미 헤르만 헤세는 '나보다 더 구름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했다 오늘 우리나라 전 국민들 다 여기있습니다! 손 들고 나와 서겠다 흰 도자기 같은 한국 한국 같은 구름들 구름 같은 한국인들 모두 다 손 번쩍 들고 시,좋은글 2021.08.11
봄의 공중전화- 김경미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텅 빈 공중전화 들어가 동전 넣고 전화 건다 전국의 공중전화들 모두 다 울리리라 달려와 그 전화 제일 먼저 받는 사람 누가 됐든 평생 인연 삼으려는데 벚나무가 받았나 수화기 안에서 벚꽃잎들 우르르 쏟아진다 시,좋은글 2021.08.11
낭비 - 김경미 신지도 못할 치수의 구두를 산 적이 있다 입지도 못할 치수의 옷을 산 적이 있다 기다리지 말아야 할 치수의 시간을 기다린적이 있다 커피집이 아니라 인생이 그만 문을 닫을 시간이니 나가달라는 것 같은 치수의 시간을 시,좋은글 2021.08.11
물꽃들 - 김경미 여름엔 물이 꽃이다 물 찰랑대야 꽃이다 보라색 하루살이 물달개비, 흰색 하트 무늬 물배추 앵무새 깃털의 물채송화, 물질경이와 물양지 물수선화 노랑물봉선같이 이름에 물이 찰랑대야 여름이다 물이 악기인 여름에는 시,좋은글 2021.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