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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좋은글 562

의자 -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라도 깔고 호박에 똬리라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개 내놓는 거여 ​ 중에서 ​

시,좋은글 2021.08.10

북어 - 최승호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이 벼니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찌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밫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자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시,좋은글 2021.08.07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순례11 - 오규원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 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만의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 피하지 마라 빈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

시,좋은글 2021.08.07

용서의 냄새 - 김경미

아침에게서 수박 냄새가 난다 장미 냄새 같기도 하다 ​ 어제까지만 해도 머리가 찢기듯 천벌 속이었는데 갑자기 이유도 없이 아무 이유도 없이 말끔해졌다 ​ 용서 때문이다 ​ 누가 나를 용서한 거다 나 때문에 상처받은 누군가가 여태 날 용서 않고 벼르다가 오늘 마악 날 용서한 거다 깨끗이 ​ 틀림없다 용서 받는 냄새 ​ 누군가가 날 용서한 거다.

시,좋은글 2021.08.07

어떤 부부 -사랑은 사람을 뛰게 한다- 김경미

한 달간의 긴 외국 출장 마친 남편 돌아오는 날 ​ 아내는 공항 마중 가는 대신 아픈 아기 안고 업고 내내 베란다 아래쪽 길만 내다본다 ​ 어느 순간 드디어 길에 나타난 남편 ​ 큰 개리어에 큰 가방 두 개와 비닐백까지 잔뜩 끌고 메고 들고서도 달리기 선수처럼 정신없이 뛴다 ​ 그리움은 사람을 뛰게 하는구나 사랑은 사람을 뛰게 하는구나 ​ 아내도 아기안고 현관으로 마구 뛴다

시,좋은글 2021.08.07

매듭예술-8월31일 - 김경미

'침매듭.옭매듭.접친 올무매듭. 8자매듭. 줄임매듭. 소매듭. 감은 매듭. 던지기 매듭. ......' ​ 그 중 매듭계엣 꼽는 '매듭의 왕'은 ​ 바다 지나 선착장 도착한 배들 뭍에 붙들어 맬 때 쓰는 '스페인 보-라인매듭법 bowline knot'이라지만 ​ 무슨 소리 제 팔자 제가 꼬는 '8자 매듭'만한게 어디 있을라구 ​ 나쁜 팔자는 끝났다고 잊으라고 팔자 접는 ​ 오늘은 매듭 예술의 날 ​

시,좋은글 2021.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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