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시,좋은글 591

간발 - 황인숙

앞자리에 흘린 지갑을 싣고 막 떠나간 택시 오늘따라 지갑이 두둑도 했지 ​ 애가 타네, 애가 타 당첨번호에서 하나씩 많거나 적은 내 로또의 숫자들 ​ 간발의 차이 중요하여라 시가 되는지 안 되는지도 간발의 차이 간발의 차이로 말이 많아지고 , 할 말이 없어지고 ​ 떠올렸던 시상이 간발 차이로 날아가고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치고 길을 놓치고 날짜를 놓치고 사람을 놓치고 간발의 차이로 슬픔을 놓치고 슬픔을 표할 타이밍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네 바늘에 찔린 풍선처럼 빰을 푸들거리며 ​ 놓친건 죄다 간발의 차이인 것 같지 누군가 써버린지 오랜 탐스런 비유도 간발로 놓친 것 같지 ​ 간발의 차이로 놓치기만 했을까 잡기도 했겠지, 생기기도 했겠지 간발의 차이로 내 목숨 태어나고 ​ 숱한 간발 차이로 지금 내가 이러..

시,좋은글 2022.02.17

오늘 또 하루가 진다 - 김준

시간이 지나가도 잊을 수 없는 그대가 어둠 내린 거리에 서성인다 늘 전화박스에 기댄 모습으로 전화를 걸면 가지도 않은 신호음은 내 귀에 들린다 그대 이름은 늘 얼굴에 젖는 빗물인 걸 눈물은 이제 안 흘려 이건 다만 빗물인걸 젖은 눈동자로 멈춰진 어디선가내린 어둠에 거리를 서성거리면 이 거리는 모두 그대의 곁일 거라는 믿음으로...... 오늘 또 하루가 진다.

시,좋은글 2022.02.17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 박준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 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 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 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 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 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 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시,좋은글 2022.02.17

혼자의 넓이 - 이문재

혼자의 넓이 - 이문재 해가 뜨면 나무가 자기 그늘로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종일 반원을 그리듯이 혼자도 자기 넓이를 가늠하곤 한다 해 질 무렵이면 나무가 제 그늘을 낮게 깔려오는 어둠의 맨 앞에 갖다놓듯이 그리하여 밤새 어둠과 하나가 되듯이 우리 혼자도 서편 하늘이 붉어질 때면 누군가의 안쪽으로 스며들고 싶어한다 너무 어두우면 어둠이 집을 찾지 못할까 싶어 밤새도록 외등을 켜놓기도 한다 어떤 날은 어둠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유리창을 열고 달빛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그러다가 혼자는 자기 영토를 벗어나기도 한다 혼자가 혼자를 잃어버린 가설무대 같은 밤이 지나면 우리 혼자는 밖으로 나가 어둠의 가장자리에서 제 그림자를 찾아오는 키 큰 나무를 바라보곤 한다

시,좋은글 2022.02.17

시를 주는 아이 - 나태주

너는 시를 주는 아이 아침에도 주고 저녁에도 주고 만나서도 주고 헤어져서도 주고 멀리 있어도 주는 아이 전화목소리로도 주고 문자메시지로도 주고 카톡으로도 주는 아이 너는 세상에 희망과 꿈을 심는아이 네가 웃을 때 세상도 웃고 네가 밝은 마음일 때 세상도 잠시 근심을 놓고 편안하게 숨을 쉰다 오늘은 네가 웃으니 세상도 웃고 지구도 웃겠다.

시,좋은글 2022.02.17

그리우면 숲으로 들어간다 - 최석근

삶이란 숲으로 들어가는 역사를 만드는 과정이라 하지 않았던가 오늘도 너의 그리움을 만나러 숲으로 들어간다 ​ 너의 가지에 펴놓은 숱한 이야긷ㄹ이 나뭇잎에 매달려 사그락 거리며 노랗게 , 붉게 물들어 간다 ​ 누군가를 기다리는 나무들은 외로워서 아름답다 한 가지씩 외로움을 가진 나무들은 한 그리움이 전해주는 매력이 있다 ​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한 계절쯤 외로움을 달해기 위하여 숲으로 찾아가 나무의 그리움에 이야기를 건네지 않는가 ​ 조금 여백이 남아있는 수채화의 그림이 감미롭듯이 반쯤 외로운 하루를 지탱하고 있는 여인의 뒷모습에는 그리운 노래가 흘러나오는 건반의 색이 비친다 그리울 때마다 나는 숲으로 들어간다.

시,좋은글 2022.02.17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