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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 52

곡비 - 문정희

곡비 - 문정희  사시사철 엉겅퀴처럼 푸르죽죽하던 옥례 엄마는곡을 팔고 다니던 곡비였다 이 세상 가장 슬픈 사람들의 울음천지가 진동하게 대신 울어주고그네 울음에 꺼져 버린 땅 밑으로떨어지는 무수한 별똥 주워 먹고 살았다그녀의 허기 위로 쏟아지는 별똥 주워 먹으며까무러질 듯 울어대는 곡소리에이승에는 눈 못 감고 떠도는 죽음 하나도 없었다저승으로 갈 사람 편히 떠나고남은 이들만 잠시 서성일 뿐이었다 가장 아프고 가장 요염하게 울음 우는옥례 엄마 머리 위에하늘은 구멍마다 별똥 매달아 놓았다 그네의 울음은 언제 그칠 것인가엉겅퀴 같은 옥례야, 우리 시인의 딸아너도 어서 전문적으로 우는 법 깨쳐야 하리 이 세상 사람들의 울음까무러치게 대신 우는 법알아야 하리

시,좋은글 2024.08.29

나무 - 곽재구

나무 - 곽재구  숲속에는 내가 잘 아는나무 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나무들 만나러날마다 숲속으로 들어갑니다 제일 키 큰나무와제일 키 작은 나무에게 나는 차례로 인사를 합니다 먼 훗날 당신도 이 숲길로 오겠지요 내가 동무 삼은 나무들을 보며그때 당신은 말할 겁니다 이렇게 등이 굽지 않은 언어들은 처음 보겠구나 이렇게 사납지 않은 마음의 길들은 처음 보겠구나

시,좋은글 2024.08.28

따뜻한 편지 - 곽재구

따뜻한 편지                          곽재구 당신이 보낸 편지는언제나 따뜻합니다.물푸레나무가 그려진10전짜리 우표 한 장도 붙어 있지 않고보낸이와 받는 이도 없는그래서 밤새워 답장을 쓸 필요도 없는 그 편지가날마다 내게 옵니다.  겉봉을 여는 순간잇꽃으로 물들인지상의 시간들 우수수 쏟아집니다.그럴 때면 내게 님은모국어의 추억들이 얼마나 흉칙한지요. 눈이 오고꽃이 피고당신의 편지는 끊일 날 없는데버리지 못하는 지상의 꿈들로세상 밖을 떠도는 한 사내의퀭한 눈빛 하나 있습니다.

시,좋은글 2024.08.28

은행나무 - 곽재구

은행나무                                               곽재구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던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이 생각난다.맑은 바람결에 너는 짐짓네 빛나는 눈썹 두어 개를 떨구기도 하고누군가 깊게 사랑해온 사람들을 위해보도 위에 아름다운 연서를 쓰기도 한다.신비로와라 잎사귀마다 적힌누군가의 옛추억들 읽어가고 있노라면사랑은 우리들의 가슴마저 금빛 추억의 물이 들게 한다.아무도 이 거리에서 다시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벗은 가지 위 위태하게 곡예를 하는 도롱이집 몇개때로는 세상을 잘못 읽은 누군가가자기 몫의 도롱이집을 가지 끝에 걸고다시 이 땅 위에 불법으로 들어선다 해도수천만 황인족의 얼굴 같은 너의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희망 ..

시,좋은글 2024.08.28

새 - 천상병

새 - 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내 영혼의 빈 터에새 날이 와 새가 울고 꽃이 필 때는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아름다운 것과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한창인 때에나는 도랑과 나무가지에 앉은한마리 새 정감에 그득찬 계절슬픔과 기쁨의 週日(주일),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나쁜 일도 있었다고그렇게 우는 한마리 새.

시,좋은글 2024.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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