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 - 정호승 눈발 - 정호승 별들은 죽고 눈발은 흩날린다날은 흐리고 우리들 인생은 음산하다북풍은 어둠속에서만 불어오고새벽이 오기 전에 낙엽은 떨어진다언제나 죽음 앞에서도 사랑하기 위하여검은 낮 하얀 밤마다 먼 길을 가는 자여다시 날은 흐르고 낙엽은 떨어지고사람마다 가슴은 무덤이 되어희망에는 혁명이절망에는 눈물이 필요한 것인가오늘도 이 땅에 엎드려 거리낌이 없기를다시 날은 흐리고 약속도 없이별들은 죽고 눈발은 흩날린다 정호승 시집중에서 시,좋은글 2024.08.14
마지막 편지 - 정호승 마지막 편지 - 정호승 축하한다이가 시리도록차고 맑게 살다 간너의 일생을 축하한다눈보다 희고짧고 작게 살다간너의 영혼을 축하한다그러나한반도는 쓸쓸하다 북한산에 눈이 내리고또 녹았다 정호승 시집중에서 시,좋은글 2024.08.14
갈대 - 정호승 갈대 - 정호승 내가 아직도 강변에 사는 것은죽은 새들이 내 발밑에서 물결치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도 아무도 살지 않는 강변에 사는 것은실패도 인생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강한 자가 이긴 것이 아니라이긴 자가 강한 것이라는 죽은 새들의 정다운 울음소리를 들으며온종일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나의 삶이 진정 괴로운 것은분노를 삭일 수 없다는 일이었나니 내가 아직도 바람 부는 강변에 사는 것은죽은 새들이 날아간 하늘에 햇살이 빛나기 때문이다. 정호승 시집중에서 시,좋은글 2024.08.14
이중섭의 방 - 정호승 이중섭의 방 - 정호승 제주도 서귀포이중섭 가족 네 식구가바닷게들과 가난하게 살았던초가 문간방솥단지 하나 달랑 입구에 놓여 있는1.4평짜리 방 한칸그 좁은 방 안을 들여다보다가깜짝 놀랐다한라산이 방안에 저 혼자 앉아어깨에 쌓인 흰 눈을 털고 있었다. 정호승 시집중에서 시,좋은글 2024.08.12
선운사 상사화 - 정호승 선운사 상사화 - 정호승 선운사 동백꽃은 너무 바빠보러 가지 못하고선운사 상사화는보러 갔더니사랑했던 그 여자가 앞질러가네그 여자 한번씩 뒤돌아볼 때 마다상사화가 따라가다 발걸음을 멈추고나도 얼른 돌아서서나를 숨겼네 정호승시집중에서 시,좋은글 2024.08.12
밥값 - 정호승 밥값 - 정호승 어머니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아무리 멀어도아침에 출근하듯이 갔다가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겠습니다식사 거르지 마시고 꼭꼭 씹어서 잡수시고외출하실때는 가스불 꼭 잠그시고너무 염려 하지는 마세요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정호승 시집중에서 시,좋은글 2024.08.12
선암사 - 정호승 선암사 -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묵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 앞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시집 중에서 시,좋은글 2024.08.12
술한잔 - 정호승 술한잔 - 정호승 인생은 나에게술한잔 사주지 않았다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나는 몇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번도술한잔 사주지 않았다눈이 내리는 날에도돌연 꽃 소리없이 피었다지는 날에도 정호승 시집 중에서 시,좋은글 2024.08.12
소나무 - 정호승 소나무 - 정호승 비닐로 뿌리를 친친 동여맨어린 소나무들이트럭에 실려어디론가 떠나간다 봄비 그치면더러는 뿌리내려 살기도 하고더러는 어디에서죽기도 할 것이다 소나무는 죽으면버릴게 없으나사람은 죽으면버릴게 너무 많다 정호승시집 중에서 시,좋은글 2024.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