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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좋은글 562

대숲 아래서 - 나태주

대숲 아래서 - 나태주  1.바람은 구름을 몰고구름은 생각을 몰고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대숲 아래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 2.밤새도록 댓잎에 별빛 어리듯그슬린 등피에는 네 얼굴이 어리고밤 깊어 대숲에는 후둑이다 가는 밤 소나기 소리그리고도 간간이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 소리 3.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자고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자국문을 여니 산골엔 실 비단 안개 4.모두가 내것만이 아닌 가을,해지는 서녘 구름만이 내 차지다.동구밖에 떠드는 애들의소리만이 내 차지다또한 동구밖에서부터 피어오르는밤안개만이 내 차지다. 하기는 모두가 내것만은 아닌 것도 아닌이 가을,저녁밥 일찍이 먹고우물가에 산보 나온 달님만이 내 차지다물에 빠져 머리칼 헹구는달님만이 내 차지다.

시,좋은글 2024.11.01

동백꽃 피려 할 때 - 전영숙

동백꽃 피려 할 때 - 전영숙 찌르르 젖이 돈다둥글게 문질러아기의 입에  젖을 물린다동백나무가 공중의 입에 꽃몽우리를 물리 듯게 어찌나 세게 빠는지아기의 이마와 코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꽃몽우리 끝도 피가 몰린 듯 발갛다 쓰리고 화끈거리겠지속엣 것을 빨아 낼 때부르르 떨리던 고통흔들리는 동백나무가바람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쏟아져 나오는 젖 물처럼터져 나올 꽃잎들또 공중의 입속은 얼마나 달콤할까햇빛과 바람에통통 분 꽃몽우리가 벌어진다 벌과 나비공중에 속한 것 모두잠든 아기 배만큼부르겠다찌르를 젖이 돈다동백이 피려 한다

시,좋은글 2024.10.30

공포영화 - 황중하

공포영화 - 황중하  내가 두려워 지기 시작한다. 나의 머릿속으로 이입해 들어오는 영상들.나는 이미 나에게 공포영화다. 나는 나와 내 존재의 배후를 의심한다.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 창밖의 별은 날카로운 칼끝처럼 나를 겨눈다. 나는 누군가의 손을 그리워하지만 동시에 나를 향해 뻗치는 모든 손을두려워한다. 누구에게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나는 나로부터 도망친다. 무서운 살의로부터. 무수한 별들로 부터. 별들의 가슴팍에 숨겨진 수많은 칼날들로부터. 손에 흐르는 식은 땀들. 벽장 속에 숨지만 나는 이미 내가 아니다. 완벽하게 혼자인 지금, 나는 나에게 공포영화다. 이 영화 속을 탈출하고 싶다고 되뇐다. 무수한 칼들이 나를 향해 살의를 꺼내고 벽장은 나의 숨을 조르기 시작한다.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시,좋은글 2024.10.29

가을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 이해인

가을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 이해인​​가을이여, 어서 오세요!가을, 가을,하고 부르는 동안나는 금방 흰 구름을 닮은 가을을의 시인이 되어기도의 말을 마음속에 적어봅니다.​가을엔 나의 눈길이 저 푸른 하늘을 향해파랗게 물들어더욱 깨어 있길 원합니다.서늘하게 깨어 있는 눈길로 하루를 시작하고사람들을 바라보는 가을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가을엔 나의 마음이 불타는단풍 숲으로 들어 가 붉게 물들어서더욱 사랑 할 수 있길 원합니다너그럽고 따뜻한 마음으로 하루를 사랑하고이웃을 사랑하는 가을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가을엔 나의 손길이 보이지 않는 바람을 잡아그리움의 기도로 키우며 노래하길 원합니다하루 하루를 늘 기도로 시작하고세상만물을 위해 기도를 멈추지 않는기도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가을엔 나의 발..

시,좋은글 2024.10.25

파란 밥그릇- 장동이

파란 밥그릇- 장동이​​뭉게뭉게 피어오르던 뭉게구름이아침 먹고 나와 보니흔적도 없이 다 사라졌어요​그사이 그 많던 뭉게구름 덩이를누가 저렇게 게 눈 감추듯깨끗하게 먹어 치운 걸까요​하늘 어딘가엔 아랫집 몽실이 처럼먹성 좋은 늙은 개가살고 있는지도 몰라요​아직까지 몽실이만큼반짝반짝 윤이 나게 비운 밥그릇한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요

시,좋은글 2024.10.23

탑 - 이해리

탑 - 이해리  이끼도 끼고 군데군데 금 갔다꼭대기 층 한 귀퉁이는 떨어져 나갔다떨어져나간 곳을 푸른 하늘이 채우고 있다도굴과 훼손과 유기의 질곡을온몸으로 받들고도 꼿꼿이 서 있는 것은견디는 것이 삶이기 때문이다오래 견딘 침묵은 좀 깨지기도 해야 아름다웠다고난의 상흔도 보여야 미더웠다언제부턴가 온전한 것이 외려미완이란 생각이 든다깨진 곳을 문질러 가슴에 갖다 댄다이루어지는 것 드물어도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 가슴 층층에 쌓여바람 부는 폐사지에 낡아가고 있다면당신도 나도 다 탑이다

시,좋은글 2024.10.08

박물관 옆 요양원 - 김영신

박물관 옆 요양원 - 김영신  요양원을 꺾어 들어가기 전신호를 기다릴 때면 박물관이 보였다 [오래된 미래 새로운 과거]균열간 토기들이 불편하게 선전시회 알리는 포스터와 백 년쯤이겠나세월을 따라 휘어진 소나무들이늙을 기회를 잃어버린 얼굴로우두커니 서있었다 쓸모를 다한 오래된 미래들 금이 간 얼굴로자꾸 젊어지는 엄마는쌌던 보따리 풀고 또 싸고친정집 잔치에 입을 깨끼치마저고리 한 벌수 년 째 찾고 있다 견고했던 시간들이 무녀져 내리고박제된 기억의 탁본 반복해 읽는박물관을 닮은 엄마 아가, 불을 꺼 다오눈 감으면 보이는 먼 끝이 더 환하구나불빛에 어리어 흩어질까 두려운꽃피고 새 울던 봄날의 언덕 표정이 지워진 유물 하나불편하게 끌어안은 보따리에 기대어기억의 끄트머리 새로운 과거로 간다

시,좋은글 2024.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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