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시첩2 - 임영조
밤하늘의 별처럼 총총한 구멍 속을 밤게들이 어슬렁 기어나온다 맨손체조하듯 집게발 치켜들고 땡볕에 젖은 몸을 말린다 이미 다 마른 놈들은 어디 가는지 두 눈은 분명히 앞을 보는데 다리는 슬슬 옆으로 기어간다 남의 말 할 것 없다 한때는 나도 앞으로 가야지 똑바로 걸어야지 하면서도 곁길로 게걸음친 적이 몇 번이던가 그 두렵고 낯선 길을 가고 나면 늘 얼굴 감출 방 한 칸을 소망해왔다 흰 거품을 하늘 높이 날리며 낯선 자가 나타날까 망보던 게들이 내가 오는 기척에 놀라 일제히 컴컴한 구멍 속에 몸을 숨긴다 하, 내 거동이 그토록 수상쩍은가 졸지에 혼자가 된 외로움 나는 오늘 또 당했구나 게처럼 잽싸게 제 한 몸 숨길 지상의 방 한 칸이 나는 부럽다 저 평등한 땅에 숭숭 뚫린 게구멍 어느 한 칸 세 얻어 술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