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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의 별처럼 총총한 구멍 속을
밤게들이 어슬렁 기어나온다
맨손체조하듯 집게발 치켜들고
땡볕에 젖은 몸을 말린다
이미 다 마른 놈들은 어디 가는지
두 눈은 분명히 앞을 보는데
다리는 슬슬 옆으로 기어간다
남의 말 할 것 없다
한때는 나도 앞으로 가야지
똑바로 걸어야지 하면서도
곁길로 게걸음친 적이 몇 번이던가
그 두렵고 낯선 길을 가고 나면 늘
얼굴 감출 방 한 칸을 소망해왔다
흰 거품을 하늘 높이 날리며
낯선 자가 나타날까 망보던 게들이
내가 오는 기척에 놀라 일제히
컴컴한 구멍 속에 몸을 숨긴다
하, 내 거동이 그토록 수상쩍은가
졸지에 혼자가 된 외로움
나는 오늘 또 당했구나
게처럼 잽싸게 제 한 몸 숨길
지상의 방 한 칸이 나는 부럽다
저 평등한 땅에 숭숭 뚫린 게구멍
어느 한 칸 세 얻어 술래로 숨어
이 힘겨운 시절 한 장 넘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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