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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디랭귀지 - 이인원

보디랭귀지 - 이인원  봐라,생명이란 말 대신 발가벗고 바둥거리는 저 바알간 몸을복잡한 어순과 어휘 같은 것 싹둑 잘라낸 직유의 배꼽을 간지럽단 말 대신 긁적긁적 꽃망울 터트리는 나무들처럼못 참겠단 말 대신 철썩철썩 온몸 보채는 바다처럼 탯줄도 가르기 전 터득한 몸말옹알이부터 시작된 입말 다 잊어버린 후에까지도 남는가장 오래된 미래의 말 무섭단 말 대신 삐죽삐죽 마리칼 곤두섰고춥단 말 대신 오소소 소름이 돋았던, 이제 마지막이란 말 대신 딱딱하게 굳어가는 주검 봐라,저 싸늘한 배꼽이 따뜻한 배꼽에게 남기는눈물 나게 완벽한 유언을

시,좋은글 2024.10.03

식물성 오후 - 정용화

식물성 오후 - 정용화  버스를 타려고 언덕을 내려갈 때면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힘겹게 서 있는 노인을 만날 수 있다꽃도 다 시들어 버린 목련나무 옆에서수직으로 내리는 햇살을 온 몸으로 받고 있다 오래 걸어왔던 걸음이 제 그림자에 갇혀 있다 분주함도 사라지고 야성적 본능이식물성으로 순해지는 시간미련이 없으면 저항도 없다 조금씩 땅속으로 스며들고 있는 그 노인물끄러미 행인들을 바라보고 있다저 무심함이 품고 있는 견고한 내력들 걷지 않는 발은 뿌리가 된다 나무가 되어 가는 노인과죽어야 비로소 걷는 나무가한 몸이 되어 있는 나 한 때 저 목련나무의 꽃으로 핀 적이 있다

시,좋은글 2024.10.03

나는 그때 속으로 울었다 - 김선굉

나는 그때 속으로 울었다 - 김선굉​​살다 보면 별일일 다 생긴다. 지난 일월 중순 어느날 밤이었던가. 신년 술을 한 잔 하는자리에서 선생님, 너무 늙으셨어요, 하면서 운 놈이 있었다. 나는 짐짓 웃었지만, 이보다 눈물겨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시골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편동석 선생은 쉰다섯에 접어들고 있는 나를 두고 울었다. 오십이 넘은 남자가 오십을 조금 덜 넘긴 남자를 위해 운다는 것.울 수 있다는 것.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이것은 이 땅에서 백년 만에 일어난 일일 수도 있다. 나는 또 생각한다. 언젠가는 내가 그를 위해 울게 될 날이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그의무엇을 위해 울 것인가. 사실 나는 그때 속으로 울었다. 十八놈, 지도 늙어 가면서 쓸데없이 우는군. 그의 눈물이 내 한 해를 ..

시,좋은글 2024.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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