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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 정호승

골목길 - 정호승  그래도 나는 골목길이 좋다서울 종로 피맛골 같은 골목길 보다도시 변두리 아직 재개발되지 않은 블럭담이 이어져 있는 산동네의정부 수락산 밑 천상병시인의 집이 있던 그런 골목길이 좋다담 밑에 키 큰 해바라기가 서 있고개똥이 하늘을 쳐다보다가소나기에 온몸을 다 적시는 그런 골목길이 좋다내 어릴때 살던 신천동 좁은 골목길 처럼전봇대 하나 비스듬히 하나 서 있고길 모퉁이에 낡은 구멍가게 하나쯤있으면 더 좋다주인 할머니가 고양이 처럼 졸다가부채를 부치다가어머니 병환은 좀 어떠시냐고라면 몇개 건네주는 그 가난의 손끝은 얼마나 소중한가늦겠다고 어서 다녀오라고너무 늦었다고 어서 오라고 안아주던 어머니의 그리운 손은  이제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어느 술꾼이 노상방뇨하고 지나가는 내 인생의 골목길이..

시,좋은글 2024.11.08

마음의 사막 - 정호승

마음의 사막 - 정호승  별똥 하나가 성호를 긋고 지나간다낙타 한마리가 무릎을 꿇고 기도한 지는 오래다별똥은 무슨 죄가 그리 많아서 저리도 황급히 사라지고낙타는 무슨 죄가 그리 많아서 평생을 무릎조차 펴지 못하는가다시 별똥 하나가 성호를 긋고 지구 밖으로 떨어진다위경련을 일으키며 멀리 녹두꽃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머리맡에 비수 한자루를 들고 잠이 드는 사막의 밤초승달이 고개를 숙이고 시퍼렇게 칼을 갈고 앉아 있다인생은 때때로 기도 속에 있지 않다너의 영혼을 어루만지기 위해서는 침묵이 필요하다. 24.11.5.화. 정호승문학관 특강에서

시,좋은글 2024.11.07

영등포가 있는 골목​ - 정호승

영등포가 있는 골목​ - 정호승​영등포역 골목에 비 내린다노란 우산을 쓰고잠시 쉬었다 가라고 옷자락을 붙드는늙은 창녀의 등 뒤에도 비가 내린다행려병자를 위한 요셉병원 앞에는끝끝내 인생을 술에 바친 사내들이 모여또 술을 마시고비 온 뒤 기어나온 달팽이들처럼언제 밟혀 죽을지도 모르고 이리저리 기어다닌다영등포여이제 더이상 술을 마시고병든 쓰레기통은 뒤지지 말아야 한다검은 쓰레기봉지 속으로 기어들어가홀로 웅크리고 울지 말아야 한다오늘밤에는저 백열등 불빛이 다정한 식당 한구석에서나와 함께 가정식 백반을 들지 않겠느냐혼자 있을수록 혼자 되는 것보다는혼자 있을수록 함께 되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마음에 꽃힌 칼 한자루보다마음에 꽃힌 꽃 한송이가 더 아파서잠이 오지 않는다도대체 예수는 어디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는가영등..

시,좋은글 202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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