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새꽃 - 곽효환 아직 잔설 그득한 겨울 골짜기 다시금 삭풍 불고 나무들 울다 꽁꽁 얼었던 샛강도 누군가 그리워 바닥부터 조금씩 물길을 열어 흐르고 눈과 얼음의 틈새를 뚫고 가장 먼저 밀어 올리는 생명의 경이 차디찬 계절의 끝을 온몸으로 지탱하는 가녀린 새순 마침내 노오란 꽃망울 머금어 터뜨리는 겨울 샛강, 절벽, 골짜기 바위틈의 들꽃, 들꽃들 저만치서 홀로 환하게 빛나는 그게 너였으면 좋겠다 아니 너다 시,좋은글 2021.08.13
그리운 시냇가 - 장석남 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웃고 아기 낳으면 돌멩이 같은 아기 낳으면 그 돌멩이 꽃처럼 피어 깊고 아득히 골짜기로 올라가리라 아무도 그곳까지 이르진 못하리라 가끔 시냇물에 붉은 꽃이 섞여내려 마을을 환희 적시리라 사람들, 한잠도 자지 못하리. 시,좋은글 2021.08.13
아침 - 정현종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있는 건 오로지 새날 풋기운! 운명은 혹시 저녁이나 밤에 무거운 걸음으로 다가올른지 모르겠으나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시,좋은글 2021.08.13
겨울아침 - 김달진 까치 한마리 날아와 우는 아침 어여삐 전해오는 기별에 환희 밝아오는 겨울 빛 먼 산간 마을에는 반가운 사람을 맞이하러 남빛 연기가 길 따라 피어오르고 겨울나무 가지에 쌓인 함박눈이 한 웅큼 떨어져 내릴 때 환한 빛 속으로 날아가는 까치 한마리 적요한 겨울을 흔들던 꽁지가 나무 가지 우듬지에 새하얗다. 시,좋은글 2021.08.13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 김승희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냑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트리지 않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어떤 일이 있더라고 목숨을 끊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천사같은 김종삼, 박재삼 그런 착한 마음을 버려선 못쓴다고 부도가 나서 길거리로 쫒겨나고 인기 여배우가 골방에서 목을 매고 뇌출혈로 쓰러져 말 한마디 못해도 가족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 중환자실 환자 옆에서도 힘을 내어 웃으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속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런 마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 가장 아름다운 것 속에 더 아름다운 피 묻은 이름, 그 가장 서러운 것 속에 더 타오르는 찬란한 꿈 누구나 다 그런 섬에 살면서도 세상의 어느 알려.. 시,좋은글 2021.08.13
정월의 노래 - 신경림 눈에 덮여도 풀들은 싹트고 얼음에 깔려서도 벌레들은 숨쉰다 바람에 날리면서 아이들은 뛰놀고 진눈깨비에 눈 못 떠도 새들은 지저귄다 살얼음 속에서도 젊음이들은 사랑하고 손을 잡으면 숨결은 뜨겁다 눈에 덮여도 먼동은 터오고 바람이 맵찰수록 숨결은 더 뜨겁다 시,좋은글 2021.08.13
숲- 정희성 숲에 가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시,좋은글 2021.08.13
겨울사랑 -문정희 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햐얀 생에 속에 뛰어 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실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시,좋은글 2021.08.11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 정현종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시,좋은글 2021.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