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

경주감은사지 - 금당터와 삼층석탑

소소한 소선생 2022. 2. 24.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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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문무대왕릉 갔다가 근처에 있는 경주감은사지에 왔다

안내 현판을 자세히 읽어보고 사진을 찍었다.

예전에 두번 정도 와본 곳이다.  다시 새롭게 공부한다.

 

감은사는 동해에서 신라 수도 경주로 들어가는 가장 빠른 길에 세워진 절이다,

이곳에는 삼층석탑 2기와 금당, 강당 등의 건물 터만 남아 있다.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뒤 부처의 힘을 빌려 왜구의 침략을 막고자 동해 바다에서

경주로 가는 길목인 이곳에 절을 창건하였고, 이후 신문왕 2년에 완성하였다.

문무왕은 "내가 죽으면 바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지내 달라"라고 유언하였는데, 그 뜻을 받들어 장사지낸 곳이 대왕암이고 

그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절 이름을 감은사라 하였다.

문무왕과 만파식적

만파식적

'만파식적'의 한자를 풀이하면 '커다란() 파도()를 잠재우는() 피리()'라는 뜻이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거든 동해 한가운데 있는 바위섬에 못을 만들고 나를 묻어다오 죽어서 용이 되어 왜적들이 신라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겠다."

문무왕의 아들인 신문왕은 문무왕의 유언을 받들어 동해 한가운데 바위섬에 못을 만들고, 그 못 안에 아버지의 뼈를 모신 수중 왕릉을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해를 지키던 관리 하나가 신문왕을 찾아와서 말했다.

문무대왕이 묻힌 대왕암 저편에 보지 못하던 섬하나가 새로 생겨 감은사를 행해 오고 있습니다.”

감은사에 도착한 신문왕이 이견대(利見臺)에 올라 동해를 바라보니 거북처럼 생긴 섬 하나가 물 위에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섬 꼭대기에는 대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는데, 해가 지자 서로 합쳐져서 한 그루가 되는 것이었다. 신문왕이 배를 타고 안개를 헤치며 그 섬으로 갔더니, 잠시 뒤, 용이 나타나 말했다.

저 나무를 베어 피리를 만들면 천하가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바다 속의 큰 용이 되신 문무왕과 김춘추 장군께서 내리신 보물입니다.”

신문왕은 대궐로 돌아와 그 대나무로 대금을 만들게 하였고, 이 대금을 '만파식적'이라고 이름 지었다.

감은사는 금당, 강당, 중문이 한 줄로 배치되어 있다. 금당 앞에 쌍탑이 있고 건물들을  화랑으로 두른 통일 신라의

전형적인 가람 배치를 보여준다. 금당 밑에는 배수 시설이 있어 동해의 용이된 문무왕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하였다고한다.

이곳은 문무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원찰이자 호국사찰, 성전이 설치되었던 사찰이었지만, 창건 이후 절의 역사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쌍탑으로 향하는 길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감은사지의 금당 터 앞에 있는 쌍탑이다,

신문왕 2년에 세워진 감은사는 삼국 통일 후 나타나는 신라 쌍탑 가람배치의 첫 사례로, 두 탑은 이후 조성되는 신라 석탑에 양식적 토대를 제공하여 한국 석탑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탑 뒤편의 느티나무 노거수, 죽은듯하다.

두 탑은 조립한 방식이나 사용된 석재의 수는 같지만, 동탑이 서탑에 비해 부재들이 조금씩 크다.

두 탑 모두 3층만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여러 돌을 짜 맞춘 방식이다. 돌과 돌을 고정하기 위해 쇠로 만든

은장을 곳곳에 사용하였다. 탑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과 함께 장식의 중심을 뚫어 세운 기둥인

찰주가 남아 있다.

1959년과 1996년에 서탑과 동탑을 각각 해체, 수리 하였다.  이 때 두 탑 모두 3층 몸돌 윗부분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

되었다. 이 중 외함과 내함으로 이루어진 사리장치는 신라의 정교한 금속 공예술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서탑-탑의 모양이 단아하면서도 웅장하다

갑자기 하늘이 꼭 오로라처럼 보이는 구름 쇼가 펼쳐졌다. 

얼른 한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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