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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에 대하여 - 안도현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 ​ 제비꽃에 대해 알기 위해서 따로 책을 뒤적여 공부할 필요는 없지 ​ 연인과 들길을 걸을때 잊지 않는다면 발견할 수 있을 거야 ​ 그래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거야 자줏빛이지 ​ 자주빛을 톡 한번 건드려봐 흔들리지? 그건 관심이 있다는 뜻이야 ​ 사랑이란 그런 거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 봄은, 제비꽃을 모르는 사람을 기억하지 않지만 ​ 제비꽃을 아는 사람 앞으로는 그냥 가는 법이 없단다 ​ 그 사람 앞에는 제비꽃 한 포기를 피워두고 가거든 ​ 참 이상하지? 해마다 잊지 않고 피워두고 가거든 ​

시,좋은글 2022.02.17

사람들은 왜 모를까 - 김용택

이별은 손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보는 산은 흰 이미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시,좋은글 2022.02.17

간발 - 황인숙

앞자리에 흘린 지갑을 싣고 막 떠나간 택시 오늘따라 지갑이 두둑도 했지 ​ 애가 타네, 애가 타 당첨번호에서 하나씩 많거나 적은 내 로또의 숫자들 ​ 간발의 차이 중요하여라 시가 되는지 안 되는지도 간발의 차이 간발의 차이로 말이 많아지고 , 할 말이 없어지고 ​ 떠올렸던 시상이 간발 차이로 날아가고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치고 길을 놓치고 날짜를 놓치고 사람을 놓치고 간발의 차이로 슬픔을 놓치고 슬픔을 표할 타이밍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네 바늘에 찔린 풍선처럼 빰을 푸들거리며 ​ 놓친건 죄다 간발의 차이인 것 같지 누군가 써버린지 오랜 탐스런 비유도 간발로 놓친 것 같지 ​ 간발의 차이로 놓치기만 했을까 잡기도 했겠지, 생기기도 했겠지 간발의 차이로 내 목숨 태어나고 ​ 숱한 간발 차이로 지금 내가 이러..

시,좋은글 2022.02.17

오늘 또 하루가 진다 - 김준

시간이 지나가도 잊을 수 없는 그대가 어둠 내린 거리에 서성인다 늘 전화박스에 기댄 모습으로 전화를 걸면 가지도 않은 신호음은 내 귀에 들린다 그대 이름은 늘 얼굴에 젖는 빗물인 걸 눈물은 이제 안 흘려 이건 다만 빗물인걸 젖은 눈동자로 멈춰진 어디선가내린 어둠에 거리를 서성거리면 이 거리는 모두 그대의 곁일 거라는 믿음으로...... 오늘 또 하루가 진다.

시,좋은글 2022.02.17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 박준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 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 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 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 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 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 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시,좋은글 2022.02.17

혼자의 넓이 - 이문재

혼자의 넓이 - 이문재 해가 뜨면 나무가 자기 그늘로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종일 반원을 그리듯이 혼자도 자기 넓이를 가늠하곤 한다 해 질 무렵이면 나무가 제 그늘을 낮게 깔려오는 어둠의 맨 앞에 갖다놓듯이 그리하여 밤새 어둠과 하나가 되듯이 우리 혼자도 서편 하늘이 붉어질 때면 누군가의 안쪽으로 스며들고 싶어한다 너무 어두우면 어둠이 집을 찾지 못할까 싶어 밤새도록 외등을 켜놓기도 한다 어떤 날은 어둠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유리창을 열고 달빛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그러다가 혼자는 자기 영토를 벗어나기도 한다 혼자가 혼자를 잃어버린 가설무대 같은 밤이 지나면 우리 혼자는 밖으로 나가 어둠의 가장자리에서 제 그림자를 찾아오는 키 큰 나무를 바라보곤 한다

시,좋은글 2022.02.17

시를 주는 아이 - 나태주

너는 시를 주는 아이 아침에도 주고 저녁에도 주고 만나서도 주고 헤어져서도 주고 멀리 있어도 주는 아이 전화목소리로도 주고 문자메시지로도 주고 카톡으로도 주는 아이 너는 세상에 희망과 꿈을 심는아이 네가 웃을 때 세상도 웃고 네가 밝은 마음일 때 세상도 잠시 근심을 놓고 편안하게 숨을 쉰다 오늘은 네가 웃으니 세상도 웃고 지구도 웃겠다.

시,좋은글 202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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