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좋은글

나무, 날다 - 구석본

소소한 소선생 2024. 6. 2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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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날다 - 구석본

 

 

나무와 나무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고

우우우우 우거지는 봄

 

상수리나무 정중앙에는 딱딱구리 집이 있고

그 안에는 딱따구리알 서너 개

은밀하게 품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무는 하늘을 날기 위해

먼저 가슴을 후벼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잎과 가지로 펄럭이다가

부스러기로 떨어지는 한 생( 生) 의 껍질과

부름켜에 화석으로 쌓여가는 

고독의 나이테까지

후벼내고 파내어 물관부 깊숙이

너의 자궁이 되어 너를 품을 때

눈부신 공중으로 날 수 있다는 것을

상수리나무는 알았다

 

새가 하늘로 날아 오른다

나무가 하늘로 날고 있는 것을 처음 보았다

 

황혼의 붉은 시간을 지나

새 한 마리,

상수리나무 몸 안 깊은 곳에 날개를 접는다

 

딱따구리,

마침내 뿌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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