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좋은글

소실점 - 원도이

소소한 소선생 2024. 11. 18.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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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실점 - 원도이

 

 

검은 나무가 스쳐 지나간다

발밑에서 바숴지는 낙엽이 지나간다 지금 막 떨어지는 단풍잎이 지나간

다 우리는 줄지어 걷고 있다 맨 앞 사람이 그곳에 가장 가까운 듯이 보인

다 산 너머 공원을 향해 걷고 있는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그곳을

향해 걷고 있었다

 

길들이 그곳으로 모이고 있다

우리가 걸어온 산길과 샛길과 아스팔트가 모여들고 있다 까치가 우는

일이나 해가 지는 일이나 흰 머리의 억새가흔들리는 일이나 모두 그곳으

로 모이는 일이다 문득 오후 다섯시의 바람이 공원으로 모여들다 흩어진

 

가뭇없어 보이는 그곳, 언제나 멀어 보이는 그곳, 곧장 가야 하는 그곳,

한쪽으로 굽어지기도 하는 그곳, 긴 터널의 끝에서 반드시 바주해야 할 것

만 같은 그곳,  옷 벗은 나무들의 길 위에 서면 지나온 길과 다가올 길의

저 끝에서 손짓하는 그곳, 도처에 널린 그곳, 우리가 선 곳이 그곳일 수도

있는 그곳

 

그곳은 다가가면 달아난다 그림자 없는 짐승처럼

걸을 때마다 그곳은 자꾸 생겨난다 초사흘 달이 생겨나고 가로등이 생

겨나고 공원에 밤이 생겨나는 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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