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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 - 조우연

소소한 소선생 2024. 11. 1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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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 - 조우연

 

 

길고 긴 고독에 적응하기 위해

기린은 긴 목을 갖게 되었다.

 

고래는 지독한 고독에 살아남기 위해

뭍을 버리고 심해로 들어가

수억 년 동안 잠수 중이다

 

강대나무가 적막하다

주목은 산정에서 고독과 싸우다 선 채로 죽는 진화를 택했을 것이다

아직 가 닿지 못한

달행이의 더딘 쓸쓸은 지금도 진화중이다

 

인류는 나름 항거했다

고독에 잡히지 않으려 꼬리를 도려내고

날개를 잘라 바람 속 공허에 맞섰다

그러나 끝내 고독에 순응하여 거대 독무덤에 

무진장  고독하게 묻힌 조상이 있었다

 

다윈, 저녁을 혼자 걷는 그의 직립보행은 퇴행을 걷고 있었을 것이며

잡아 먹히지 않으려 고흐는 고독에게 총을 겨누고 죽었지만

그 남자의 고독은 무한 복제 되고 있다

 

지금 뭐해, 비, 비가, 오네, 라든지

아니, 별, 별일 아니고, 달이 떴는데, 그게, 그냥, 참, 그래서.....등등

우리가 저녁밥을 혼자 먹으며 

퇴화중인 언어를 더듬거릴 때

아, 이런 고독사의 전성시대

 

인류 출현 이래

고독은 보란 듯이 진화 중인 것이다.

<시인동네>202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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