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좋은글

골목길 - 정호승

소소한 소선생 2024. 11. 8.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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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 정호승

 

 

그래도 나는 골목길이 좋다

서울 종로 피맛골 같은 골목길 보다

도시 변두리 아직 재개발되지 않은 

블럭담이 이어져 있는 산동네

의정부 수락산 밑 

천상병시인의 집이 있던 

그런 골목길이 좋다

담 밑에 키 큰 해바라기가 서 있고

개똥이 하늘을 쳐다보다가

소나기에 온몸을 다 적시는 

그런 골목길이 좋다

내 어릴때 살던 신천동 좁은 골목길 처럼

전봇대 하나 비스듬히 하나 서 있고

길 모퉁이에 낡은 구멍가게 하나쯤

있으면 더 좋다

주인 할머니가 고양이 처럼 졸다가

부채를 부치다가

어머니 병환은 좀 어떠시냐고

라면 몇개 건네주는 

그 가난의 손끝은 얼마나 소중한가

늦겠다고 어서 다녀오라고

너무 늦었다고 어서 오라고 안아주던 

어머니의 그리운 손은  이제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어느 술꾼이 노상방뇨하고 지나가는 

내 인생의 골목길이 좋다

 

24.11.5. 정호승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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