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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가 있는 골목​ - 정호승

소소한 소선생 2024. 11. 6.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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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가 있는 골목​ - 정호승

영등포역 골목에 비 내린다

노란 우산을 쓰고

잠시 쉬었다 가라고 옷자락을 붙드는

늙은 창녀의 등 뒤에도 비가 내린다

행려병자를 위한 요셉병원 앞에는

끝끝내 인생을 술에 바친 사내들이 모여

또 술을 마시고

비 온 뒤 기어나온 달팽이들처럼

언제 밟혀 죽을지도 모르고 이리저리 기어다닌다

영등포여

이제 더이상 술을 마시고

병든 쓰레기통은 뒤지지 말아야 한다

검은 쓰레기봉지 속으로 기어들어가

홀로 웅크리고 울지 말아야 한다

오늘밤에는

저 백열등 불빛이 다정한 식당 한구석에서

나와 함께 가정식 백반을 들지 않겠느냐

혼자 있을수록 혼자 되는 것보다는

혼자 있을수록 함께 되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

마음에 꽃힌 칼 한자루보다

마음에 꽃힌 꽃 한송이가 더 아파서

잠이 오지 않는다

도대체 예수는 어디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는가

영등포에는 왜 기차만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가

 

24.11.5.화 정호승 특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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