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좋은글

강 - 이성복

소소한 소선생 2021. 8. 1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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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 떨군 나무드의 그림자가 길게 깔리면서 푸르름이

가시지 않은 땅은 적쇠에 그을은 스테이크 같았다 처

음엔 딸기나 참외를 재배하는 비닐 하우스 길게 뻗

친 허연 비닐 지붕인 줄 알았다 미안하다 눈 덮인 겨

울이면 땅의 탯줄처럼 한없이 늘어나 우리들 속옷 속

덜아문 배꼽까지 닿아 있던 강이며, 둘이서 담배 한

대 피우는 사이 풀풀풀 떡가루 같은 눈을 쓸어올리며

너는 방패연의 긴긴 꼬리처럼 단숨에 떠오를 것 같았

다 아니다 다시 칼바람 잦아들면 강은 눈썹 끝까지

옥양목 홑이불 끌어올리며 자던 어린 날의 늦잠이거나

내장이 다 터진 어떤 삶을 덮어 가리던 수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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