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22. 제주 한달살이 - 대정성지 -정난주 (마리아)묘
제주 대정 성지
정난주 마리아
유명한 황사영 백서(帛書)사건으로 순교한 황사영의 부인 정난주(丁蘭珠, 본명 命連) 마리아, 다산 정약용의 맏형 정약현(丁若鉉)의 딸이기도 한, 그녀가 남편을 잃은 뒤 두 살 난 아들을 데리고 하염없이 뱃길을 가야 했던 곳이 바로 제주이다.
제주의 첫 번째 신앙인으로 기록되는 정난주는 제주도 대정(大靜)에서 관비(官婢)가 되어 천수를 다한 뒤 모슬포(慕瑟浦) 뒷산에 묻혔다.
당당한 모습으로 천주를 증거하고 목숨을 바친 남편은 비록 천상의 영복을 누릴 것을 의심치 않았기에 영광이요 환희이기도 했지만, 인간적으로는 엄청난 고통과 실의에 빠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리고 겨우 두 살 난 젖먹이 아들 경한을 데리고 떠나는 유배의 길은 너무나도 외롭고 고통스런 일이었다. 죄인으로 제주 땅을 밟은 뒤 자신은 물론 아들마저 죄인의 자식으로 평생을 멸시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차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궁리를 한 끝에 그녀는 뱃사공에게 뇌물을 주어 매수하고 사공은 다시 두 명의 나졸에게 술을 먹여 역시 그들을 매수한 뒤 젖먹이를 추자도 예초리 서남단 언덕 위에 내려놓는 데 성공했다. 나졸들은 뱃길에서 아이가 죽어 수장(水葬)했노라고 보고함으로써 이 일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추자도에 남은 경한은 오씨(吳氏) 성의 어부 손에 의해 하추자도 예초리에서 장성하게 되는데 그 후손이 아직도 추자도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혈혈단신으로 제주목 관비로 신분이 추락하게 된 정씨는 제주의 거친 바람결만큼이나 모진 시련을 신앙과 인내로 이겨 냈다. 뿐만 아니라 풍부한 교양과 뛰어난 학식 그리고 굳건하고 깊은 믿음의 덕으로 주위 사람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았다. 그래서 그는 비록 노비의 신분이었음에도 ‘한양 할머니'라고 불리며 이웃의 사랑을 받았다.
그 후 37년간을 정씨는 오직 신앙에 의지해 살아가다가 1838년 음력 2월 병환으로 숨을 거두고 이웃들은 그 유해를 바로 이곳 모슬포 뒷산에 묻었다. 비록 그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 삶 전체가 순교자의 생애를 방불케 하는 굳건한 신앙의 증거로 가득했기에 후손들은 그를 순교자의 반열에 올리고 있다.
1970년대 초, 교회사가 김구정과 김병준 신부는 수소문 끝에 정난주의 무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김씨 집안에서 대를 이어가며 무덤을 돌보아 왔기 때문이다.
이 무덤은 1977년에 순교자 묘역으로 단장되었다가 1994년 제주 신자들의 염원을 담은 ‘대정 성지’로 조성되었다.
십자가의 길
제주 대정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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