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

포석정과 곡수거

소소한 소선생 2022. 3. 17.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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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수거란?

곡수거(曲水渠)에 술잔을 띄워 그 잔이 자기 앞을 지나쳐 버리기 전에 시 한 수를 지어 잔을 들어 마시는 것을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이라 한다.

중국에는 가공된 암반에 국자 또는 풍자 형태를 곡수거가, 일본에서는‘S’자 형태의 곡수거가 보임

중국에는 자금성(紫金城) 건륭화원 내의 계상정(溪上亭), 담자사(潭柘寺)유배정(流杯亭), 원명원의 심추정(深秋亭), 송나라 숭복궁(崇福宮) 내에 곡수거 등이 있고, 일본에는 나라(奈良)시의 평성궁 유적지에 곡수거가 있다.

● 곡수거의 유래

고대 중국의 주대(周代)의 소국인 정(鄭)나라의 풍속에 근원을 둠

진나라 때 왕희지의 ≪난정기≫에 의해 널리 알려짐

  → 중국 동진 때353 33일 명절날, 절강성 소흥지역에서 왕희지 등 42인이 수계사(修禊事) 행하고, 흐르는 개울 위에 술잔을 띄우고 술잔이 자기 앞에 올 때까지 시를 한 수 지어 읊는 놀이를 함

5세기 이후 우리나라의 궁궐이나 상류계층을 중심으로

  → 풍류생활을 즐기기 위한 정원시설로 곡수거 도입

중국의 건축·토목·조경에 관한 기술서인 영조법식(營造法式)≪(원야園冶)에 조성법이 기록되어 있다.

 

포석정 방문자 센터

● 우리나라의 곡수거에 대한 기록

 안학궁 후원의 곡수거

  → 우리나라 곡수거 유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

 최치원이 무성서원 유상대(流觴臺)에서 곡수연을 즐김

  → 곡수거 관련 최고의 문헌 기록

 고려시대 기홍수는 정원에 곡수거를 만듬

 윤선도는 보길도 원림에 낭음계를 조성하고 곡수연을 즐김

 신라시대 포석정

 조선시대 창덕궁 소요암의 ‘C’자 곡수거

포석정 관람료

● 포석정 개요

- 경북 경주시 배동 454-3. 사적 제1호 

- 신라의 이궁(離宮)으로 현재는 정자는 없어지고,

  유상곡수연을 하던 유배거만 남아있다.

 포석정에 대한 기록

 삼국사기에 포석정에서 연회를 베풀던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자살을 강요당하는 기록이 나옴

 삼국유사에 헌강왕이 포석정에서 유락하다가 남산신의 춤을 보고 따라 추었다는 기록

 동국여지승람 서거정의 시 포석정감회에 유상곡수 하던 터라 쓰여 있다.

  - 포석정 옆에 계욕을 하던 포석계가 있고, 포석 상류에는 포석정에 물을 공급하던 저수지인 안골샘물이 있다.

∙ 입지

- 경주 남산 서쪽 산기슭에 위치

  → 자연 속에서 휴식과 풍류를 즐김

- 근처에 계욕장 추정지인 포석계(鮑石溪) 발굴

  → 60m 떨어진 곳에 1.4m×1.1m의 인공으로 가공한 웅덩이

- 동국통감 포석정 근처에 성남이궁(城南離宮)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 포석정은 이궁의 정원으로 볼 수 있다.

 형태

- 전복 모양

 포석정(鮑石亭) 포(鮑)자는 전복을 의미함

 돌도랑의 폭, 기울기, 형태에 따라 유속과 시간의 불규칙성 유발

입수구
입수구

● 구성

수로의 폭 31cm, 총길이 22m, 깊이 21~23cm

안쪽에 12개의 돌, 바깥쪽에 24개의 돌로 구성

  → 이외에 입수구 쪽에 6, 출수구 쪽에 4개로 모두 46개의 가공석으로 조립됨

  → 1년 12달과 24절기 상징

포석정은 음양의 이치를 도입한 것으로, 배수구인 거북머리는 양, 즉 남근이고

  → 곡수거는 음(陰), 즉 포궁인 여궁으로 보기도 함

- 기울기와 폭

입수구 쪽은 7~13, 중간 부분은 1~2, 출수구 쪽은 1도의 기울기를 나타냄

  → 처음에는 유속이 빠르다가 타원형 부분에서는 천천히 흐름

구간에 따라 다른 경사도로 유속의 변화를 부여함

46개의 다른 모양의 가공석으로 유속과 물흐름의 다양화 추구

  - 일본 본중진의 논문에 따른 소요시간

    ∙ Kuttkler 공식 적용 : 18초 소요

    ∙ Manning 공식 적용 : 44초 소요

포석계의 석재유구
주위의 계곡에 있던 돌을 가져와 전시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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