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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쓴 시 - 정호승

소소한 소선생 2024. 8. 1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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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쓴 시 - 정호승

 

 

봄이 오면

사람 밑에 앉아 있지 않고

나무 밑에 앉아 있겠어요

종일토록 봄비가 오다가 그치지 않으면

사람 밑에 서서 비를 맞지 않고

나무 밑에 서서 비를 맞겠어요

잘라버린 귀를 다시 찾아 붙이고

나무에 내리는 빗소리에 인생을 빼앗기고 말겠어요

쓸쓸히 비를 맞고 가는

죽은 벗들을 길에서 만나면

일일이 반갑게 악수를 하고

밤새도록 우산을 함께 쓰고 가겠어요

비가 그치고 햇살이 눈부셔도

더이상 날아가는 화살을 잡으려 하지 않겠어요걸어

작은 산을 향해 걸어가는 큰 산을 

묵묵히 따라가겠아요

 

정호승 시집 <포옹>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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