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나희덕
말들이 돌아오고 있다
물방울을 흩뿌리며 모래알을 일으키며
바다 저편에서 세계 저편에서
흰 갈기와 검은 발굽이
시간의 등을 후려치는 채찍처럼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나는 물거품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이 해변에 이르러서야
히히히히힝, 내 안에서 말 한마리 풀려 나온다.
말의 눈동자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파도 속으로 사라진다
가라, 가서 돌아오지 마라
이 비좁은 몸으로는
지금은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수만의 말들이 돌아와 한 마리 말이 되어 사라지는 시간
흰 물거품으로 허공에 흩어지는 시간
<2017년 1월 6일 수성도서관에서 오후에 빌려 본 시집 중에서>
반응형
'시,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월이 가면 - 박인환 (0) | 2023.04.07 |
---|---|
푸르른 날 - 서정주 (0) | 2023.04.07 |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 류시화 (0) | 2023.04.07 |
친구 - 시바타 도요 (0) | 2023.04.04 |
한밭, 그 너른 들에서 - 강윤후 (0) | 2023.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