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좋은글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 나희덕

소소한 소선생 2023. 4. 7. 11:32
반응형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나희덕

 

말들이 돌아오고 있다

물방울을 흩뿌리며 모래알을 일으키며

바다 저편에서 세계 저편에서

 

흰 갈기와 검은 발굽이

시간의 등을 후려치는 채찍처럼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나는 물거품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이 해변에 이르러서야

히히히히힝, 내 안에서 말 한마리 풀려 나온다.

 

말의 눈동자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파도 속으로 사라진다

 

가라, 가서 돌아오지 마라

이 비좁은 몸으로는

 

지금은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수만의 말들이 돌아와 한 마리 말이 되어 사라지는 시간

흰 물거품으로 허공에 흩어지는 시간 

 

 

<2017년 1월 6일 수성도서관에서 오후에 빌려 본 시집 중에서>

반응형

'시,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월이 가면 - 박인환  (0) 2023.04.07
푸르른 날 - 서정주  (0) 2023.04.07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 류시화  (0) 2023.04.07
친구 - 시바타 도요  (0) 2023.04.04
한밭, 그 너른 들에서 - 강윤후  (0) 2023.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