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맛 - 이 희섭 음식 속으로 수많은 칼자국이 박힌다칼자국은 혈관을 돌며 몸속에서골격과 근육을 키워낸다손과 얼굴, 사상도 만든다 나는 무수한 칼자국을 삼키며 자라왔다어머니의 칼날이 유년의 배고픔을 씻어냈고누나의 칼질이 사춘기 격정을 도려냈다그녀을 만난 이후로나는 그녀의 도마 위에 오른 칼맛에 길들었다 오래도록 칼자루를 쥔 사람들이 나를 사육해 왔다혀끝에 비릿한 칼내음칼맛에 나는 오장육부를 베인다 잘리는 살점들의 날카로운 비명이 없다면단면으로 배어 들어가는 칼의 맛을 어찌 알겠는가상처가 맛을 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