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30 이곳은 조선조의 문신이요 국문학상 대표적인 시조시인으로일컫는 윤선도 선생의 유적지다. 선생의 자는 약이, 호는 고산 또는 해옹이다. 선생은 광해 4년에 진사가 되고 4년후 성균관유생으로서 권신의 횡포를 지탄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벽지에 유배되었다. 광해 15년에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석방되어 의금부도사에 취임하였으나 곧 사직하고 이곳 향리에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인조 6년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봉림대군과 인평대군을 모시는 왕자사부가 되고 한성서윤과 예조정랑을 역임하는 등 수차에 걸쳐 나라에 중용되었다. 병자호란후에는 주로 완도의 보길도와 해남의 수정동 및 금쇄동에 은거하며 자연에 들어 원림을 경영하고 산중신곡과 어부사시사등 불후의 명작을 이루어 조경문화 및 국문학의 발전에 큰 공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