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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잔치는 끝났다- 인생 - 최영미

소소한 소선생 2023. 2. 23.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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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물론 나도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인생

                             최영미

 

달리는 열차에 앉아 창 밖을 더듬노라면

가까운 나무들은 휙휙 형체도 없이 도망가고

먼 산만 오롯이 풍경으로 잡힌다

 

해바른 창가에 기대앉으면

겨울을 물리친 강둑에 아물아물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시간은 레일 위에 미끄러져

한 쌍의 팽팽한 선일 뿐인데

 

인생길도 그런 것인가

더듬으면 달음치고

돌아서면 잡히는

흔들리는 유리창 머리 묻고 생각해본다

 

바퀴소리 덜컹덜컹

총알처럼 가슴에 박히는데

그 속에

내가 있고 네가 있고

아직도 못다 한 우리의 시름이 있는

가까웠다 멀어지는 바깥세상은

졸리운 눈 속으로 얼키설키 감겨오는데

전선 위에 무심히 내려앉은

저걸,

하늘이라고 그러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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