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제주도의 성당

정난주성당 -제주도 성당

소소한 소선생 2022. 4. 25. 10:09
반응형

22.4.22. 제주도 한달살이 - 정난주 성당

오늘은 성당순례다.제주시에 있는 성당으로

 

정난주 마리아

1773년에 정약용의 큰 형 정약현, 광암 이벽의 손윗누이 경주 이씨 부부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숙부 정약전으로부터 천주교를 접하게 되었으며, 고모부인 이승훈으로부터 마리아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천주교를 매개로 황사영과 인연이 되어 결혼한 뒤 서울에서 거주하였다.

 

성당 옆에 여성 긴급전화 여성센터가 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숙부 정약종이 참수되고 정약전과 정약용은 유배되었으며, 남편인 황사영은 충북 제천 배론으로 은신하였다. 당시 정난주 마리아는 아들 경한을 데리고 처가인 마재로 잠시 몸을 피했다.

하지만 1801 9 29일 제천 배론에 은신 중이던 황사영이 체포되고 백서가 발각되면서 대역죄인으로 남편 황사영은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었으며, 가산은 모두 몰수되었고, 황사영의 모친 이윤혜는 거제도로, 마재에 있던 정난주는 두살박이 아들 황경한과 함께 제주도로 유배길을 떠나게 되었다.

180111월 정난주 마리아는 제주도로 유배 가던 중 추자도에 이르러 뱃사공에게 패물을 주면서 아들을 추자도에 내려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녀는 하나뿐인 아들이 역적의 자손으로 자라길 원치 않았기 때문에 뱃사공에게 아들이 죽어 수장했다는 거짓보고를 간청했던 것이다.

결국 허락을 받은 정난주 마리아는 추자도 예초리 서남단 물산리 언덕에 어린 아들 황경환을 내려놓은 채 제주도로 향했다. 언덕에 홀로 놓여 있던 어린 아들은 추자도 예초리에서 거주하던 뱃사공 오상선이 거두어 길렀다.

정난주 마리아는 제주도 화북포구에 도착한 뒤 유배지인 대정현에서 관비생활을 하였는데 인근 마을 사람들로부터 한양 마님또는 한양 할머니로 불렸다고 한다.

정난주 마리아는 유배생활 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글도 가르치고 전교활동도 하였다고 전한다. 또한 그녀는 마을에 있던 어린 김상집형제를 양자처럼 길렀으며, 그 덕택에 장성한 김상집형제가 그녀를 양모로 모셨다고 한다. 김상집형제는 정난주 마리아가 183826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을 때 장례를 치르고, 형제와 그 후손들이 정난주 마리아의 묘를 정성스레 관리하였다고 한다.

정난주 마리아는 제주도에 처음으로 천주교 신앙을 전교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1845년 김대건 신부가 제주에 표착해 한경면 용수 앞바다에서 미사를 봉헌했다고 한다.

누가 기도하고 계셨는데 그래도 살짝 사진을 찍었다.

우리도 잠시 기도하고 나왔다.

아직 성당이 조립식건물이라서 아마도 건축헌금을 모아서 새로 지을려고 하는 것 같다.

몇년 후에는 아마도 다른 모습으로 있을 것 같다. 

 

<정난주 성당> 지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