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쓴 시 - 정호승 봄이 오면사람 밑에 앉아 있지 않고나무 밑에 앉아 있겠어요종일토록 봄비가 오다가 그치지 않으면사람 밑에 서서 비를 맞지 않고나무 밑에 서서 비를 맞겠어요잘라버린 귀를 다시 찾아 붙이고나무에 내리는 빗소리에 인생을 빼앗기고 말겠어요쓸쓸히 비를 맞고 가는죽은 벗들을 길에서 만나면일일이 반갑게 악수를 하고밤새도록 우산을 함께 쓰고 가겠어요비가 그치고 햇살이 눈부셔도더이상 날아가는 화살을 잡으려 하지 않겠어요걸어작은 산을 향해 걸어가는 큰 산을 묵묵히 따라가겠아요 정호승 시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