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성 오후 - 정용화 버스를 타려고 언덕을 내려갈 때면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힘겹게 서 있는 노인을 만날 수 있다꽃도 다 시들어 버린 목련나무 옆에서수직으로 내리는 햇살을 온 몸으로 받고 있다 오래 걸어왔던 걸음이 제 그림자에 갇혀 있다 분주함도 사라지고 야성적 본능이식물성으로 순해지는 시간미련이 없으면 저항도 없다 조금씩 땅속으로 스며들고 있는 그 노인물끄러미 행인들을 바라보고 있다저 무심함이 품고 있는 견고한 내력들 걷지 않는 발은 뿌리가 된다 나무가 되어 가는 노인과죽어야 비로소 걷는 나무가한 몸이 되어 있는 나 한 때 저 목련나무의 꽃으로 핀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