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단 가는 길 - 김경성 서어나무 흰 수피 빗금 그어서 달의 근처까지 길을 냈다 물봉선화 입술 벌려서 나비를 물고 있다 길을 따라 걸어가면 달의 문에 닿을 수 있을까, 휘청거리며 먼 산길을 걸었다 몸의 모든 뼈가 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숲 언저리를 두드렸다. 새들은 구름 속으로 몸을 던지고 물봉선화의 입에 앉은 나비도 보이지 않았다 내 등을 미는 보이지 않는 손, 뒤돌아서서 서어나무 흰 잔등에 얼굴을 묻었다 잔잎들이 술렁거리며 그림자를 잘게 부쉈다 몸위에 수북이 쌓이는 서어나무 속말들 어쩌지 못하고 몸 구부려서 꽃잔을 만들었다. 꽃잔을 감싸 안는 따스한 그림자 아 원추리꽃 너머로 아슴하게 보이는 시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