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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밭, 그 너른 들에서 - 강윤후

소소한 소선생 2023. 4. 4.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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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밭, 그 너른 들에서

                                                 강윤후

 

나를 표시하는 몇 개의 숫자들과 더불어 산다

간혹 집 전화번호나 통장 비밀번호 같은 것을 잊고서

청어 대가리처럼 어리둥절해 한다

먼 도시의 지인들 사이에 떠도는

나에 대한 소문들을 듣기도 한다

소문에서 나는 무엇에 대단히 화가 나 있거나

누구를 아주 미워한다 행복한 가장이 되어

세월을 잊고 세상일마저 모른 채 지낸다고 한다

소문만으로도 내 근황이 충분하므로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비듯 일없이 달력이나 넘겨본다

아무 징조도 없이 계절이 바뀌고 그러다

어느날 아침 출근하려는데 문득

자동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이 너른 들판 어디쯤에선가 나도

그렇게 시동이 꺼질 것이다

갑작스레 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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