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들에게 - 최영미 언젠가 몹시 피곤한 오후 돼지에게 진주를 준 적이 있다. 좋아라 날뛰며 그는 다른 돼지들에게 뛰어가 진주가 내 것이 되었다고 자랑했다. 허나 그건 금이 간 진주. 그는 모른다. 내 서랍속에 더 맑고 흠 없는 진주가 잠자고 있으니 외딴섬, 한적한 해변에 세워진 우리집.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내 방의 장롱 깊은 곳에는 내가 태어난 바다의 신비를 닮은, 날씨에 따라 빛과 색깔이 변하는 크고 작은 구슬이 천 개쯤 꿰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사람들은 모른다. 그가 가진 건 시장에 내다 팔지도 못할 못난이 진주, 철없는 아이들의 장난감으로나 쓰이라지, 떠들기 좋아하는 돼지들의 술안주로나 씹히라지. 언제 어디서였는지 나는 잊었다. 언젠가 몹시 흐리고 피곤한 오후, 비를 피하러 들어간 오두막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