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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성 오후 - 정용화

소소한 소선생 2024. 10. 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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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성 오후 - 정용화

 

 

버스를 타려고 언덕을 내려갈 때면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

힘겹게 서 있는 노인을 만날 수 있다

꽃도 다 시들어 버린 목련나무 옆에서

수직으로 내리는 햇살을 온 몸으로 받고 있다

 

오래 걸어왔던 걸음이 제 그림자에 갇혀 있다

 

분주함도 사라지고 야성적 본능이

식물성으로 순해지는 시간

미련이 없으면 저항도 없다

 

조금씩 땅속으로 스며들고 있는 그 노인

물끄러미 행인들을 바라보고 있다

저 무심함이 품고 있는 견고한 내력들

 

걷지 않는 발은 뿌리가 된다

 

나무가 되어 가는 노인과

죽어야 비로소 걷는 나무가

한 몸이 되어 있는

 

나 한 때 저 목련나무의 꽃으로 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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